스님 법문

[신중기도] 3월 19일 신중기도 입재 법문 2026-03-19

 

유튜브 링크 : https://youtu.be/1oldrnrx0iY 

 

260119 신중기도 법문 - 종범큰스님

1. 일 시 : 2026319(병오년 21) (진관사)

2. 주 제 : 義相祖師 法性偈 이야기 18 - 십불보현대인경

 

안녕하세요.

 

오늘 진관사 병오년 2월 초하루 법문입니다. 오늘 법문은 법성게 중에 십불보현대인경(十佛普賢大人境)’, 십불보현대인경, 그 법문이에요. 10번을 독송을 하고 시작하겠습니다. 십불보현대인경 십불보현대인경 십불보현대인경 십불보현대인경 십불보현대인경 십불보현대인경 십불보현대인경 십불보현대인경 십불보현대인경 십불보현대인경.

 

법성게가 부처님의 깨달음을 730구로 나타내셨는데, 그중에 첫 부분이 초18, 처음 열여덟구는 부처님 성불 교화의 내용을 말한 거예요. 성불을 증득할 증(), 나눌 분(), 증분(證分)이라고 하거든요. 증분. 그래서, 증분이라고 그러고, 교화를 진성심심극미묘 불수자성수연성 여기서부터 오늘 읽은 십불보현대인경까지를 교분(敎分)이라고 그래요. 가르치는 내용이다. 교분. 증득은 성불한 거고, 교분은 교화한다는 말이거든요.

그 교분의 총정리한 뜻이 이사명연무분별(理事冥然無分別) 십불보현대인경(十佛普賢大人境)! 부처님이 뭘 깨달았는가? 이사명연무분별이라, 그게 부처님 깨달은 거예요. 그럼, 이사(理事)는 뭐냐? 이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가 깊고 깊어서 나눌 수가 없다. 명연(冥然)이란 말은 깊다는 말이에요. 이사라는 것은, ()는 안 보이는 거고 사()는 보이는 거고, 보이는 속에 보이지 않는 게 있고 보이지 않는데 보이는 게 있어서 깊고 깊어. 그래서 분별은 나누는 건데, 무분별은 못 나눈다.

그럼, 이사명연무분별의 경지, 머무는 세계가 누구냐? 십불과 보현이 있는데, 그분들은 깨달음을 얻은 대인경이다! 대인경이라, 대인이라는 말은, 태어난 때가 없다, 대인이라는 말은 돌아가시는 때가 없다. 범부는 태어나는 게 있고 돌아가시는 게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태어난 것이 시작이 아니고 우리가 죽는 것이 끝이 아닌데, 그걸 시작과 끝으로 보고 사는 것을 정식소견이라 그래요. 감정 인식으로 보는 바다. 정식소견(情識所見). 이 정식소견에서 깨달음을 얻었는데, 그 깨달음이라는 게 뭘 깨달았느냐? 법성원용무이상이라, 이걸 깨달은 거예요. 법성은 원융해서 둘이 없다. 둘은 어디서 나오느냐? 감정 인식에서 나오고 둘이 없는 건 어디서 나오느냐? 깨달음에서 나온다. 그래서, 둘을 가지고 살면 못 깨달은 범부고 둘이 없는 세계에서 살면 깨달은 분인데, 그 깨달은 분을 십불대인, 보현대인, 그렇게 설명을 해요. 깨달은 분을 십불대인이라고 하고 보현대인이라고 한다.

그러면, 십불대인은 어디에 머무느냐? 그게 이제 정각 세계인데, 바르게 깨달은 세계인데, 정각을 비유로 말하면, 해인이라 그래. 해인(海印), 바다 해()자 도장 인(), 해인. 정각은 비유로 말하면 해인이다. 그럼, 해인이 뭐냐? 바다는 물인데 물은 그대로 물이에요. 근데, 그 물에 산도 비추고 달도 비추고 하늘도 비추고 사람도 비추고 다 비춰요. 그것이 흰 종이에 도장 찍은 것처럼 비춘다고 그래가지고, 바다 해()자 도장 인(), 해인이라 그래요. 비유인데, 부처님이 정각을 이루고 보니까 해인과 같더라. 그럼, 해인이는 뭐냐? 오직 한마음이다! 우주 만물 인생 생애가 오직 한 마음이다. 이걸 깨달은 거예요. 아무 반응이 없네. 이게 뭐냐? 이거 종이 아니에요? 그럼, 종이인 거를 누가 아냐? 이게 마음에 나타난 거예요. 그래서 물질도 마음에 나타나고 꿈도 마음에 나타나고 생각도 마음에 나타나고 시간도 마음에 나타나고 그래서 마음이 없으면 시간도 없고 물질도 없고 살고 죽는 곳이 어디냐? 전부 생사가 현어 심원(現於心源)이라, 생사는 다 마음 근원에 나타난다. 그래서, 일체가 유심이다. 모든 것이 오직 마음이다! 이걸 깨달은 거예요. 그래서, 그걸 비유로 하면, 바닷물은 하나인데, 거기에는 산도 있고 달도 있고 모든 것이 있는데, 모든 것이 다 바닷물이라는 거죠. 바닷물이 말라버리면 산도 달도 모든 거 안 보이잖아요. 그래서, 이 몸이 뭐냐? 이게 마음인 거예요. 그 마음의 바닷물 속에 이 몸이라고 하는 그림자가 지금 보이고 있는데, 그거를 못 깨달은 사람은 그냥 몸으로만 알지 그게 마음인 걸 몰라. 그래서, 바다를 볼 때 바닷물에 뭐가 비치면 그 그림자만 보지 그 그림자가 바닷물인 거를 모르는 거와 똑같다 이거예요. 그래서, 십불대인경은 해인삼매(海印三昧). 그러면, 이 해인삼매를 의상 스님이 어떻게 설명했느냐면, 궁증법성(窮證法性)이라, 이 법의 본성, 법성은 각지(覺知) 본심인데, 깨달을 각()자 알 지(), ‘아는 본심이다. 아는 본심, 각지 본심인데, 그 각지 본심이 바로 모든 법의 본성이다. 그래서, 본심과 이 법성이 똑같다. 그래가지고 모든 법의 본성, 모든 생각의 본성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얻었어.

그래서 법성 · 본성을 남김없이 아는 것을 궁증(窮證)이라고 그래요. 궁이라고 하죠. 궁극이라는 궁()자 증득할 증(), 궁증법성을 하니까 이 법성은 무유원적(無有源寂)이라, 시작과 끝이 없어요. 그래서, 시작과 끝은 다 생각이 만들어낸 망상이에요. 이거 참, 다 나이 따지고 역사 따지고 이렇게 따지면서 사는 게 우리 생각인데, 이 법성에는 마음의 본성에는 시작과 끝이 없어요. 무유원적, 근원 밑바닥이 없다. 그래서, 어떻게 되냐? 구경청정(究竟淸淨)하야, 구경에, 언제까지나, 청정이라는 거는 다른 게 없다는 소리예요. 그거 외에 다른 게 없다. 구경청정을 해 가지고 가면 명백(明白)하야, 담담히 그림자도 없고 메아리도 없고 다른 이물질도 없고 그러고 밝고 깨끗해. 명백해. 그래서, 어떻게 되냐? 삼종세간이 오중현연하니, 삼종세간(三鐘世間)이라는 것은, 생각이 이해하는 국토세간, 중생세간, 불보살세간, 이걸 삼종세간이라고 그러는데, 이 불보살과 중생과 국토가 이 한마음에 다 나타나는 거예요. 오중현연이라, 그래서 한 마음은 물과 같고, 나타나는 그림자는 불보살, 또 중생, 국토다. 그래서, 명왈해인(名曰海印)이라, 그렇기 때문에 이름하여 가로되, ‘해인이라고 한다. 이게 이제 의상 스님이 직접 하신 말씀이거든요. 그게 뭘 깨달았느냐? 일체가 마음이라는 걸 깨달은 거야. 이거 뭐냐? 이거 뭐예요? 그 마음이라고 지금 말한 게 누구예요? 그래서, 이걸 마음이라고 하는 것도 마음이고 또 마음이 마음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도 마음이에요. 이게 마음이라고 하는 것도 마음이고 이게 물질이라고 하는 것도 마음이고 산다고 하는 것도 마음이고 죽는다고 하는 것도 마음이고 이걸 궁증법성이라고 그래요. 법성을 아주 남김없이 알았다. 그러니까 남김없이 알면 어떻게 되냐? 삼종세간이, 모든 것이, 오중현연이라, 그 법성 한마음속에 다 나타난다. 이 몸이 이게 마음속에 나타난 그림자요. 그래서, 이 마음은 물과 같고 몸은 그 물속에 비친 그림자와 같다. 그걸 깨달은 거거든요. 부처님이 깨달은 게 바로 모든 것이 마음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러니까, 무유공포(無有恐怖), 죽는 것도 마음이고 사는 것도 마음이니까 두려움이 없어요, 무유공포요. 또 원리전도몽상(遠離顚倒夢想), 걱정 근심이 없어요. 왜냐하면, 마음은 생사가 없고 마음은 시작과 끝이 없으니까. 바닷물이 그게 그림자 없어진다고 그래서 바닷물이 없어지는 게 아니고 그림자가 생겼다 해서 바닷물이 생긴 게 아닐까. 그걸 십불대인경계라고 한다 이거죠. 십불 대인, 그러면 십불은, 부처님만을 중심으로 할 때는 삼불을 말하는데, 청정법신 비로자나불 · 원만보신 노사나불 ·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 삼불을 말하는데, 이제 화엄경에서는 십불을 말해요. 그 십불은 뭐냐 하면 모든 부처님이 다 한마음에서 나왔다 이걸 말해요. 그래서, 한 마음이 일심이 십불이고 십불이 일심이다. 부처님과 중생과 국토가 한마음이다 이거요. 그걸 깨닫는 게 깨달음이에요. 그래서, 이 법문 할 때 이렇게 보이잖아요. 그 마음을 보이는 거예요. 그러면, 십불을 화엄경에서는 어떻게 설명하냐? 첫 번째 부처님을 성정각불이라고 그래요. 이룰 성()자 정각이라는 정각(正覺), 또 불(), 성정각불(成正覺佛), 정각을 이룬 부처님, 이렇게 나와요. 그 마지막 부처님을, 따를 수()자 즐거울 락()자 부처 불(), 수락불(隨樂佛)이라고 그래요. 그러니까 정각을 딱 이루고 보니까 공포가 하나도 없고 걱정이 하나도 전도몽상이 하나도 없으니까 인연 따라서 모든 곳에 응해요. 그걸 응화라고 하거든요, 응화(應化). 그리고 즐거움을 줘. 그래서 따라서 즐거워한다. 이게 따를 수()자 즐거울 락(), 응화수락(應化隨樂)이란 말이에요. 공포와 이게 망상이 없으면 걱정 근심이 없어요. 걱정 근심이 없으면 두려움이 없기 때문에 짜증 낼 일이 사실 없거든요. 근데, 왜 짜증 내냐? 자기가 걱정되거든. 그러니까 짜증 낼 수밖에 없지. 속으로 막 걱정되는데 짜증 내지 마라? 그건 안 되는 거예요. 짜증 내고 싶으면 짜증 내야 이게 풀리지, 화내지 마 그러면 안 돼요. 화날 때 화내야 그게 풀리지, 안 내면 어떻게 돼? 속이 터진다고 그러잖아요. 속 터지면 어떻게 돼요? 죽잖아. 우리가 말은 다 하고 있어요. 속 터져 그럼 짜증이 폭발해서 몸이 없어지겠다는 소리거든요.

그러니까 성정각불인데, 화엄경에서는 성정각불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느냐면 그런 거예요. 삼세간이, 삼종세간이, 국토세간 · 중생세간 · 불보살세간이 전부 일체 중생의 마음이다. 삼종 세간이 이제 마음이기 때문에 그게 이제 안주 세간이다. 세간에 편안히 머문다. 이게 화엄경이에요. 뭐 이걸 버리고 저걸 취하는 게 아니라 몸도 편안히 몸에서 머물고 물질에서도 편안히 머물고 어디서든지 일체가 마음이라 편안히 머문다. 뭐 버리는 게 없어요, 화엄경은. 그런데 편안히 머문대. 그럼, 세간에 안주하는 거 하고 정각을 이룬 거 하고는 무슨 차이가 있냐? 세간에 안주만 하고 마는 게 아니고 거기서 정각을 이뤄요. 정각을 이룬다고 하는 것은 이 세간 만물이 전부 자기 마음인 것을 다 아는데, 거기서 정각을 이루면 뭘 하느냐? 중생 번뇌에 물들지 않아요. 세간에 머물되, 중생이 걱정하는 탐욕에 물들지 않고 번뇌에 물들지 않고 걱정 근심에 물들지 않고 시작과 끝에 물들지 않아. 그래서, 세간에 있으면서 세간 중생 번뇌에 물들지 아니하니까 그걸 정각이라고 한다. 이 세간이 다 보이고 접하는데, 그게 마음인 걸 깨달았거든요. 그래서, 이 세간에 물들지 않는 거예요. 그래가지고 깨달은 분들은 처세간을 해요. 세간에 머물러. 처세간(處世間). 세간에 물들지 않으니까 세간을 벗어난다고 그래서 이세간(離世間)이라 그래요. 떠날 이() . 그러면 이게 얼마나 중요하냐? 그러면 예를 들면, 아들을 키운다, 아들 귀엽잖아요? 안아주고 이게 처세간이요, 그 아들과 함께 하는 거예요. 근데, 이세간이라는 거는 아들한테 욕심을 내지 않아요. 너는 내가 원하는 대로 커줘야 된다, 이거 없어요. 네가 알아서 커라, 인마. 아들한테 집착을 하지 않아. 욕심을 하지 않아. 자기 희망대로 아이가 돼 주기를 바라지 않아요. 그게 이세간이에요.

처세간 이세간, 세간에 머물면서 세간을 떠나. 그걸 또 여래를 선서(善逝)라고 그래요. 착할 선()자 갈 서(), 선서(善逝). 잘 세상에 머무는데 세상에서 집착하는 마음이 없어. 잘 세상에서 떠났어. 그러니까 이게 세간에 머물러서 세간을 떠나지 못해서 근심 걱정이 생기고 모든 공포와 집착이 생기는 거거든요. 그래서 여래는 항상 처세간 이세간, 세간에 머물면서, 정각을 이루어가지고 세간을 떠난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 떠나지 않을 건 하나도 없어요. 왜냐하면 다 허망하고 무상해서 조금 있으면 다 없어지거든요. 그래서, 날 보고 누가 어디 여행 가자고 그러면 가서 봐봐야 금방 없어져 그러고 안 가 안 가 그러고. 어떤 사람은 이래요. 그 사람이 내 이상형이라 그래요. 그래 20년 후에 봐, 지금 모습이 있나. 집착할 게 하나도 없어요. 그래서 집착 안 하는 걸 이세간이라 그래요. 세간과 함께하는 걸 처세간이라고 그래요. 오케이. 처세간 이세간 그래서 이게 안주세간성정각이에요. 세간에 안주하면서 정각을 이루었다. 이게 이제 마지막에는 수락불인데, 이게 이 마음이라는 게 주면 줄수록 더 생기고 쓰면 쓸수록 더 생기는 게 이게 마음이거든요. 어떤 사람이 이러더라고. 고양이한테도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고 그러니까 고양이한테 줄 사랑이 어디 있어 이래요. 그거 몰라서 하는 소리예요. 안 주면 없지, 그 주면 줄수록 더 생겨. 그래서 자기 뜻대로 다 거기에 함께 하고 베풀고 즐거워하는 거를 여의(如意)라고 하거든요. 뜻과 같이 한다, 같을 여(), 뜻 의(). 자기가 물 주고 싶으면 물 주는 게 그게 여의예요. 뭐 누가 난초가 물을 달랬나, 자기가 주고 싶어서 주는 거 아니에요. 그 자기가 주고 싶어서 주면 그건 처세간이거든요. 근데, 내가 너한테 물을 얼마나 줬는데 너는 어째 은혜를 모르냐, 이렇게 집착하고 원망하면 그거는 번뇌 망상이여. 근데, 물은 주되 즐거워하기만 하고 난초에게 집착하고 원망하지 않는다, 그게 이세간이거든요. 사랑이 나쁜 건 아닌데, 문제는 사랑하면서 원망하거든. 그 못 깨달은 중생의 번뇌다. 이제 깨달은 불보살은 함께 하면서 집착하지 않아요. 그게 처세간 이세간이다. 그래가지고 항상 즐거워. 이건 이렇게 해서 즐겁고 저건 저렇게 해서 즐겁고 즐거운 것밖에 다른 건 없다. 이게 따라서즐거워한다 이건데, 이 중간에 마음불도 있고 업보불도 있고 전부가 한마음에서 일어나는 공덕 작용이거든요. 그래서, 이제 화엄경은 삼매불도 있는데, 성불이라는 게 삼매를 닦으면 나중에 성불하는 게 아니라 삼매 닦는 그 자체가 부처되는 거다, 그걸 삼매불이라고 그래요. 왜냐하면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이잖아요. 그러니까 시작이 끝이지 시작 없는 끝은 없다. 이게 화엄경이에요. 이것은 이제 앞에서 배운 일중일체(一中一切), 하나 속의 일체고, 일즉다(一卽多), 하나가 모든 것이다. 그러니까 시작이 끝이고 지금 행동이 성취고, 그럼 여기서 이제 법문 들은 사람은 다 성불한 거예요. 오케이 박수! 삼매를 닦으면 나중에 성불하는 게 아니라 삼매가 바로 성불이다. 그걸 삼매불이라고 그러고. 심불, 마음으로 보면 전부 마음이고 물질로 보면 전부 물질인데 물질로 보는 것도 마음이에요. 마음이 아니라고 하는 것도 마음이란 말이에요. 죽는다고 하는 것도 마음이고 산다고 하는 것도 마음이고 전부 마음인데, 오직 그걸 모르고 하나하나에 미혹하고 집착할 뿐이다 그거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한마음이 부처로 나타나는 걸 그냥 줄여서 십불이라고 그래요. 그래서 이렇게 십불대인경이라, 그래서 이거는 부처님이 성불한 내용인데, 그럼 이 성불한 내용이 중생 세계로 나타나는 것을 보현대인이라고 그래요. 십불대인, 보현대인, 그래서 십불대인은 해인삼매고 보현대인은 보일 시() 나타낼 현(), 시현(示現). 또 넓을 보() 몸 신(), 보신(普身)이라는 것은 온갖 몸 온갖 것을 다 말할 때 보신이라고 그래요. 넓은 몸이라고. 그러면 시현 보신이라, 온갖 몸으로 다 나타내 보인다. 이거를 이제 보현대인이라고 하거든요. 이제 화엄경에서, 보현신상(普賢身相)이 여허공(如虛空)하니, 보현의 몸의 모습이 허공과 같으니, 의진이주(依眞而住)하고 비국토(非國土), ()에 의지해서 머물고 국토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이라는 건 뭐냐? 일심법성에 머문다 이거예요. 이 우주 만물은 한마음 법의 본성뿐이다. 거기 머물러. 중생은 어디에 머무느냐? 몸에 머물러요. 그래서 만나면 몸 인사요, 건강하시죠? 뭘 건강해? 다 늙었어. 근데, 건강하시죠? 그 말이 또 듣기가 좋아요. 왜 그러냐면 얼굴 보니 이제 죽을 때 다 됐네요 이러면 기분 나쁠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이게 좋아하는 것도 마음이고 기분 나쁜 것도 마음이고 이게 전부 마음 놀음인 거예요. 그러니까 뭔 말을 들어도 그거 모든 게 마음이다. 좋아하는 것도 마음이고 이게 일심삼매예요. 삼매(三昧)라는 건 늘 본다는 거거든요. 늘 마음이라는 걸 본다. 그리고 기분 나쁠 거 없어요. 누가 약속을 안 지켜도 인연 따라서 안 지키는 거, 그 약속 지키는 데서 굉장한 기대를 갖고 굉장한 희망을 가진다면 그게 무너지니까 자기 희망으로 자기가 화나는 거예요. 내가 오래 살 궁리를 딱 하고 있는데 오늘 죽는다 그러면 기분 나쁘죠. 삶과 죽음에 전혀 집착이 없이 처세간 이세간, 세상에 머물되 세상에 집착하지 않고 살았다면 죽는 게 기분 나쁠 게 뭐 있어요? 그 모든 화나는 건 자기 희망이 무너지니까 화난다. 옛날에 그런 말이 있거든요. 저녁 굶은 시어머니는 얼굴이 이상하다. 그러니까 저녁을 먹으려고 하는 희망이 딱 있었는데 그걸 못 먹으니까 얼굴이 이상할 수밖에 더 있어요. 근데, 그 저녁에 대한 희망이 뭐 먹으면 좋고 안 먹어도 좋고 이러면 안 먹어도 뭐 얼굴이 이상할 필요가 없는 거죠. 이제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보현은 일심에 머문다. 모든 건 한마음이다. 보현은 법성에 머문다. 모든 한마음 법의 본성이다. 거기에 머물러요. 이 몸에 머물러서 이 몸이 안 죽으려고 애를 쓰면 거기서 두려움이 생겨. 그럼, 어떻게 거기서 자비를 베풀어? 자비는 누가 베푸냐? 깨닫지 못하고 베풀 때는 신심과 원력으로만 할 수 있는 거예요. 신심과 원력으로만. 그러니까 신심이 뭐냐? 옛날에 어떤 큰스님이 대중이 맨날 지게를 지고 일을 하고 그러는데 이거 아무리 스님들이라고 하더라도 맨날 일하는 게 뭐가 그리 좋겠어요? 막 짜증도 내고 힘도 들고 그러면 그 스님이 법문하기를, 그 지게 지는 걸 원망하지 마라. 지게를 짐으로 해서 나의 두려움과 나의 업장이 다 녹아지니까 지게가 그게 지게가 아니고 해탈복이다. 해탈복! 그 법문 들으니 또 마음이 실~ 풀려요. 그게 또 마음이에요. 짜증도 내지만 짜증이 풀리는 것도 마음이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뭐 힘든 일 할 때 누가 좋아요? 근데, 이 힘든 일이 나의 지혜를 이루고 나의 복덕을 이루고 나의 건강을 이루면 이 힘든 일이 나의 공덕이다. 이 공덕으로 믿고 하면 하는데, 아 이거 왜 이렇게 힘만 들어 그러면 안 돼요. 그러니까 안 하는 것도 마음이고 하는 것도 마음이니까 어떤 마음을 일으키느냐 그걸 인연이라고 하거든요. 그걸 또 업보라고 하고. 전부 화엄경 십불은 이런 거예요.

 

물질로 보면 전부 물질이고 마음으로 보면 전부 마음이다! 이렇게 되어가지고 보현은 그 일심법성에 머물고 이 중생세간, 국토세간, 지장극세간, 세간에 머물지 않는다. 이래가지고 근데, 오직 하는 일은 자기를 위해서 하는 게 아니라 수제중생심소욕(隨諸衆生心所欲)하여, 중생들이 마음으로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서, 오직 중생을 향해서 나타나는 걸 보현이라고 그래요. 시현보신등일체(示現普身等一切), 여러 중생의 몸과 같은 몸을 나타내 보여서, 등일체(等一切), 모든 것과 똑같이 다 나타낸다. 사람이 있을 때는 사람으로 나타나고, 아이가 있을 때는 아이가, 어른이 있을 때는 어른이, 죽음이 있을 때는 죽음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 있을 때는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이게 일체와 똑같이 나타내는 것을 보현이라고 그래요. 그래서 이제 부처님은 일체가 마음인데, 보현은 중생들이 희망하는 대로 나타내는 것을 보현이라 그래요. 뭔 말인지 이게 의심스럽네. 이거는 이해가 이게 좀 어려운 거거든요. 십불은, 십불대인경은, 일체가 마음이다 이거를 안게 십불이고, 보현은 중생의 희망대로 나타나는 것, 나타내는 것을 보현이라고 그래요. 그러면 이 십불대인경과 보현대인경의 차이가 뭐냐? 십불은 내정십불이라고 해가지고, 안으로 일체의 만물이 오직 마음이다, 이걸 딱 얻었어요. 그래서 안으로 일체가 마음이라고 하는 것을 얻은 걸 십불이라고 하고 또 외향이 보현이다. 밖으로 향하는 것이 보현이다. 내십불 외보현, 내십불 외보현. 그래가지고 안으로 십불을 증득하면 밖으로는 중생의 희망에 따라서 온갖 몸을 나타내는 보현행으로 나온다. 그래서, 이 십불과 보현이 다른 것이 아니라, 안으로는 십불, 밖으로는 보현, 내십불 외보현, 이게 무슨 경계냐 그러면, 이게 법성원융무이상(法性圓融無二相) 경계다. 법성이 원융해서 둘이 없는 경지에 도달하면 안으로는 십불이 되고 밖으로는 보현이 된다. 여기까지가 1차 성불 교화 과정이에요. !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