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법문

[국행수륙재] 9월 27일 국행수륙재 3재 법문 2026-10-01

 

 

네, 진관사 수륙대재 함께해 주신 사부대중, 모든 스님, 불자님들께 축하의 말씀 올리고, 또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편안한 마음, 편안한 그러한 자세로 이 법사의 말씀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많은 행사를 아침부터 일찍 봉행해서, 또 우리 거룩하신 어산어장(魚山魚丈) 스님을 경하(慶賀)해 드리는 그런 의식이 이어지고, 또 도량청(道場請)·삼보청(三寶請), 모든 의식이 지금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법사가 말씀을 드릴 시간이 그렇게 넉넉하지 않음을 아쉽게 생각하면서, 오늘 우리 수륙재 봉행에서 저에게 법문 주제를 주셨습니다. 굉장히 특별한 주제셔요. “큰 사람은 작게 하고, 작은 사람은 크게 하는 법” 뭔가 이 말씀을 듣고 생각해 보신 것이 있으신가요?

 

저는 이제 주지 스님께 여쭈었습니다. “무엇을 담고 이 말씀을 하셨습니까?” 그러니까 주지 스님이 알려주시더라고요. 그래서 “아, 그렇습니까?” 그렇게 이제 저는 인지를 해서, 주지 스님이 담고자 하시는 그 뜻에 더 많은 걸 오늘 담아드려야 이 법사가 이 거룩한 법회에 온 그런 의미가 되지 않을까, 이렇게 한 2주를 제가 이 주제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괜찮으시죠? 2주 동안을, 2주면 거의 보름인데, 진관사 수륙대재를 생각하고 앉으나 서나 ‘어떻게 크게 하지, 어떻게 적게 하지’ 그러고 다녔으면 그 자체라도 거룩하지요.

 

네, 감사합니다. 그래서 첫 번째, 여기 많은 어르신도 계시고, 이 비구니 중에 제가 좀 어른같이 대접을 받는데, 가장 중심은 우리 비구니 회장 스님이세요. 그래서 비구니 회장 스님이시고, 또 우리 진관사로 보면 회주스님이 다 제일 높으시고 — 또 네, 회주스님이 높으시다니까 웃으셔요, 그렇게 그렇게 인기가 있으신가 봐요.

 

그럼 우리 주지 스님도 가볼까요? 우리 회주스님, 주지 스님 박수 쳐주세요. 그리고 오늘 이제 대만 어른 스님을 모시고 왔어요. 우연이면 우연입니다. 그래 그랬더니, 제가 "역시 진관사는 진관사다." 우리가 뭐 무슨 행사에 가면 영어 나오는 것쯤은 그냥 우리 한국 보통이잖아요. 근데 오늘 중국어까지 막 나와요. 그래서 ‘역시 우리 진관사는 국제적인 사찰이다’ 그런 감동, 감사의 마음을 가졌고요.

 

그래서 정말 이러한 거룩한 아까 처음 시작하실 때, 저는 잠시 ‘여기가 천상이로구나’ 그런 생각해 보셨어요? 우리 얼마나 일이 많으셔요, 특히 수험생을 둔 우리 부모님 지금 어떻게 사셔요? 근데 오늘부터, 우리 아이가 뭐 점수가 모자랄 거다, 어디 탁탁 집어 치우세요. 치우실 수 있죠, 걔는 자기 길을 갈 거고, 잘 할 거고. 이 세상을 긍정적인 생각으로 살지 않으면 전부 근심 덩어리예요. 내가 부처님께 이렇게 이 거룩한 자리에서 육법공양(六法供養)을 올렸는데 뭐 "붙을 거다, 떨어질 거다" 이거 아니에요. 걔가 자기 길을 갈 거다. 이 세상에서 자기 길을 가는 것처럼 거룩한 게 없습니다.

 

얼른 보면 뭐가 좀 부족한 것 같아, 멀리 보면 — 우리 어장스님 5살, 제가 3살 때 이렇게 거룩한 사람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그래서 우리 부모님과 그 지도자는 멀리 보시는 거, 이것이 이제 굉장히 거룩한 일입니다. 아셨죠?

 

큰 사람 — 마음이 큰 사람

 

자, 질문에 들어갑니다. 지금 여기 계신 분 모두가 “아, 난 커” 지금 크죠? 뭐가 크세요? “마음이” 마음 크신 분 손 들어보시라니까 막 손을 드셔요. 역시 우리 진관사 불자, 여기 이제 막 여러 사찰 불자님이 섞였어요. 사실 금륜사 불자님들은 지금 좀 속은 기분이실 거예요. 오늘 공개적으로 오지 않았어요. 왜냐하면은 그냥 또 대만 손님도 모시고 가는데, 내 손님들까지 모시고 가면 내가 뭔가 밥만 축낼까 봐 우리 주지 스님이나 진관사는 그렇지 않지만, 괜히 그냥 좀 죄송스러워서 그래서 그냥 살짝 왔으니, 지금 이제 대타가, 대타가 이제 지금 진땀 빼고 계실 건데 어쨌든 뭐 이것도 불사고 저것도 불사고, 여기에 우리 마음이 크다고 다 손을 드시니까 역시 진관사 불자님, 또 우리 불자님들은 참 마음이 거룩하시구나.

 

근데 진짜 마음이 크세요? 그다음에 그냥 마음 큰 줄 알았어요. 그다음에 뭐가 클까요? 뭐가 크세요? 근데 여기서 다 답을 못합니다. 우리 주지 스님이 11시까지 하라고 하셨나 모르겠어요. 저는 왜 밤낮 이렇게 시간이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무엇이 클까’ 화두를 드립니다. 생각해 보실 수 있죠.

 

그래서 스님이, 좋은 것이 크면 얼마나 좋을까. 스님이 보니까 우리 수험생 부모님들은 번뇌 망상, 자녀 걱정하는 망상이 클 것 같고, 뒤에 계신 분은 남하고 비교해 갖고 어쩌고저쩌고 (하는 마음이) 크실 것 같고, 그 뒤에 계신 분은 연세가 좀 계신 것 같은데 뭐 서서 계셔서 빨리 끝내야 되겠습니다 ‘왜 나만 이렇게 아파, 왜 나만 이래’ 그런 게 크실 것 같고, 그게 다 부정적인 근거지요.

 

그다음에 정말 지금 말씀한 대로 ‘나는 마음이 커’ 오늘 손 드신 거사님도 계셔요. 마음 좁게 쓰면 제가 쫓아다니면서, 그 거룩한 법당에서 “마음 크다” 고 손 들어 놓으시고 왜 이러십니까, 왜 이러십니까, 제가 그러고 다닐지 몰라요. 그래서 내가 정말 마음이 참 크다 하면은, 오늘부터 크게 쓰셔야 돼요. 그렇게 하실 수 있겠죠. 우리가 이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거예요. 아이들 걱정, 그 걱정을 다 내려놓고, 오늘 이후로는 "우리 아이는 자기 길을 갈 것이다." 거기에 우리 부모는, 어머니 아버지는 잘 걸어가도록 오직 기도할 뿐이다.

 

그래 제가 아까 오면서도, 여기 나한전이 계셔요. 대웅전에 서서 삼배하고 나한전에 가서 꼭 기도를 할 때는 거기서 세 살 때부터 절해 온 절을, 일생을, “나는 네가 잘 되기를 나한전에서 기도했다.” 이게 우리 은사 스님 말씀이에요. 그래서 제가 일생, 나한전에 제가 큰절도 거기 가서 — 나한전이 있으셔요. 16나한이 계신 나한전을 제가 그냥 못 지나가요. 그 어른의 은혜에 보답하고 감사하고, 그래서 너가 뭐 법사가 되라, 뭐가 되라가 아니라 너가 잘 되기를 일생을 기도했다. 부모님은 그 자리이셔요. 일생 자기 길을 잘 걸어가도록. 뒤에 계신 분들이 다 부모님이세요. 아셨죠?

 

우리 스님들은 모든 중생의 어머니이시고 아버지셔요. 오늘 진관사는 정말 비구니 스님이 그냥 왕초처럼 다 모여 앉아 계셔요. 아까 들어오는데 우리 비구 스님 한 분이 거룩하게 밖에 계셔요. 그래서 ‘오늘은 비구니들한테 자리를 다 양보해 주셨구나.’ 그래서 우리 비구 스님이 밖에 계시겠죠, 또 마음이 크신 거예요. 비구 스님이 왕인데, 오늘은 자리 비켜놓고 저기서 "어서 들어가라"고 그러시더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우리가 크고 넓은 것은 내 마음부터 넓고 크게 하고 — 그 마음에 까딱 잘못하면 미움과 욕심이 채워져요.

 

6.25와 절 마당 — 상이군인 이야기

 

제가 축사에서도 말씀드렸지만, 6.25 동란 지나고 무엇이 대한민국에 남았냐. 저희가 어렸을 때, 저래 있으면 상이군인(傷痍軍人)아시나, 요즘 그런 단어도 없어졌어요. 전장에 가서 몸이 잘리고 다치고, 국가가 그걸 보호하지 못하니까 그냥 지팡이 짚고 다니면서 “어디 가야 밥을 주냐” 하면, 그때는 절에 가야 먹을 게 있었어요. 그나마 모두가 가난한데 어디 가서 밥을 먹겠어요? 불자들은 그때 안 살아보셨을지 모르지만, 저희는 그 현장을 봤습니다. 그러면은 절에 가면 또 거지 되시는 분도, 몸이 상한 상이군인도, 갈 데는 절밖에 없어.

 

그다음에 이제 우리나라가 이제 점차 잘 돼 가면서 복지도 되고, 학교도 생기고, 병원도 됐지만, 그런 거 다 만들어지기 전에는 절 마당밖에 없었어요. 그게 우리 현실이에요. 그게 저기 6.25 지나고 60년대 초반, 그게 절이에요.

 

그리고 저희, 제가 일생 잘 되기를 기도하시는 은사 스님은, 아침이면 죽을 끓이셔, 밥은 다 줄 수 없으니까 그러면 대문을 열어놓고, 이건 뭐 그대로 현실이에요. 그 사제 스님이 저한테 말씀했어요. “본각 스님, 좀 뻑뻑한 죽 좀 먹자”고. “스님, 이제 그만 문 닫고 뻑뻑한 죽 하시죠” 하면 들은 척도 안 하시네. “또 문 열어봐라.” 또 이제 문을 열어서, 닫아놓으면 이제 그만 오게 하려고. “문 열어놔라” 그러면 또 가서, 그래서 한 8시쯤 되면 이제 사람들이 안 오면, 그래서 보고서는 “오늘 여기 밥 많이 하셨어요?” 모자라면 큰일이잖아, 그러면 그때 스님이 “모자랄 것 같으면 물을 착착” (더 부으라고 하셨어요). 그럼 거기에 뭐가 들었냐 하면은, 우거지 우거지가 거룩한 음식입니다. 이제 우거지가 특별 음식이 되죠. 우거지하고 소금. 어렵게, 그땐 소금도 없었대요. 그거 하고 인천에 다꽝(단무지) 공장이 폭탄을 맞아서 다꽝이 튀어다녔대요. 그러면 다꽝 공장이 폭탄을 맞았고 다 도망갔으니까, 이런 다꽝만 우리 요즘은 단무지라고 그러죠. 그것만 있으니까 매일 가서 그걸 주워 오시는 거예요. 그래서 그거를 썰어가지고 그 간이 맞는 거예요. 그리고 죽은 그냥 물만 더 부으면 돼. 그래서 그 마당에, 그 마당에 오신 분이 아무도 배고프지 않고 갔다.

 

이게 우리 대한민국의 그 60년대 정말 아픈 역사. 그리고 그 상이군인들이 아무도 국가가 보호해 주지 않으니까, “뭐 달라, 뭐 달라” 하다 뜻대로 안 되면 화풀이를 스님들한테 하는 거예요. 그 화풀이를 다 받아준 것도 절집 마당이에요. 우리 불자님들은 그런, 쓰여 있지 않는 역사를 그리고 그 무너진 절 기둥, 누가 다 고쳤어요? 우리 동희어장스님이 바로 세우셨어요. 국가가 그걸 세웠겠어요, 지금은 문화재청이 있어서 다 문화재 돈이 나오지만, 그때 뭐가 있었겠어요? 저희들이, 스승과 제자가 기둥을 세우고, 방바닥을 하고, 지나가는 사람을 재우고 이것이 50년대 말 60년대 한국. 그 은혜를 모르고 우리가 살아요.

 

우리 불자님들은 그런 역사를 알아주셔야 돼요. 그래서 오늘날 이 번영이 있구나. 그 우리 크다고 하신 분, 마음에 그러한 세월을 다 지나서, 오늘 우리가 그러면 종교를 떠나서, 국경을 떠나서 우리 대한민국의 불자님들은 큰 마음을 가지세요. 그 마음은 바다처럼, 바다처럼 더 넓게 가지세요. 반대로 거기에 무엇이 들어가 차느냐, 욕심 채우면 안 돼. 미움 채우면 안 되고, 원망하는 사람이 제일 못난 사람이에요. 그것도 부모님한테 “나 왜 낳아줬어?” 이러면 이건 갖다 버려야 돼요. 부모님처럼 은혜로운 존재가 없잖아요. 그래서 원망도, 거기에 드러나는 인색함도 치워버리고 그래서 우리 오늘 수륙대재에 참석하신 모든 불자님은 그 첫 답이 "마음이 크고 넓다" 하시니까 얼마나 정답인지 몰라. 거기다 까딱 잘못해서 엉뚱한 거 거기다 채우면은 우리는 망한다.

 

그래서 오늘 법사 스님 말씀대로, 정말 고귀한 것들 그럼 다 채우자. 그래서 그런 것이 큰 사람은 원래 크니까 더 키우면 돼요.

 

작은 사람 — 원력(願力)

 

그것이 작은 사람은 어떻게 해요? 여기 작은 분 손 들어보라 하실까 그러시면은 작은 분은 ‘아, 키워야 되겠구나.’ 그럼 반대로 작은 사람은 크게 하라 이랬는데, 지금 뭐가 적으세요? 여기 계신 분들 맞죠? 주제가‘작은 사람은 크게 하는데’, 뭐가 적으세요? 다 크세요, 크기만 하세요.

 

저는 이렇게 세상을 살면서 원력(願力)이라는 단어 아시나요? 내가 감당하기 어렵지만 ‘해야지, 해야지, 오늘 진관사에 가야지, 오늘 내가 이런 일을 해야지’ 참 그 원력을, 우리 젊은 스님들도 마찬가지 되세요. 편하게 살려면 아까 우리 저를 맞이한 스님께 “소임이 뭡니까?” 그러니까 “평민(平民)입니다.” 그러신 것 같아요.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아, 여기 평민도 계시군요.” “온 지 3개월밖에 안 돼서, 거룩한 소임을 하나도 얻지 못하고 그냥 평민입니다.” 그래서 그 “평민”이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그러니까 우리 평민부터 시작하시면 돼요. 평민을 차별하는 곳도 아니고, 뭐 높은 분을 대접하는 곳도 아니에요. 여기는 천상세계 부처님 도량이니까 모두를 존중해요. 그래서 나는 그 평민 스님을 이름도 성도 몰라요. 평민 스님이 ‘먼 훗날 저와 같이 법사가 되어지이다.’ 이런 원력을 세웠어요.

 

우리 불자님들이 다 그런 원력으로 사시면, 작은 것을 크게 하는 건 원력밖에 없어요. 우리 불자님들 다 부자 되고 싶으시잖아요. 사실 돈이 좀 없지 않으세요? 돈이 없을 때 “내가 가난하다, 가난하다” 막 화풀이하고 원망하면 자꾸자꾸 가난해져. 딱 가난함을 딱 알아차리는 거야. “내가 가난하구나.” 저도 요즘 입버릇처럼 제가 가난해졌어요. 누가 저를 믿겠어요, 내가 가난하다는 걸. 전혀 가난해 보이지 않아요. 그래도 할 짓은 다 하고 돌아다녀요. 그건 사실 가난한 것도 아니에요. 그렇지만 제가 좀 가난한 이유가 다 있어요. 이래서 그래 다 있지만, 법문 시간이 없어서 제대로 그걸 밝혀요(밝히지 못해요). 아마 그거 다 밝히면 저 막 돈 주고 싶으실 거예요. 그런데 그건 이제 이렇게 또 법회에 와가지고 웃기만 해서 큰일 났네요.

 

그래서 내가 가난하다 그러면, 우리 불자들이 부처님께 ‘부처님, 제가 이래이래 해서 가난해서 이런 걸 못해요’ 부처님께는 정확하게 말씀을 드려야 돼요. 괜히 그냥 돈 좀 있으면 어디 가서 엉뚱한 거 사면, 부처님이 ‘너 그러면 안 된다’ 그래서 안 도와주지. 부처님은 또 그냥 눈감아주실지 모르지만, 신중작법(神衆作法) 하실 때는 이 불법을 지키는 화엄성중(華嚴聖衆)이 계시잖아요. 여기는 어디 계신가, 저기 아니신가. 화엄성중한테 이제 잘못 보이면 이거 큰일 납니다. 그러고 다 살펴요.‘너, 욕심 부리려고 돈이 없다 하는구나’ 이러면 안 돼요.

 

그러니까 우리 불자들은 아주 맑은 마음으로, ‘저는 돈이 있으면 이런 걸 하고 싶습니다. 가족도 좀 더 편안히, 아이들도 더 거룩하게, 우리 불사하시는 범패(梵唄) 스님께도 더 갖다 드리고 싶습니다’ 괜찮죠? 이렇게 하면서 우리가 작은 것을 키워가는 것, 그건 원력이에요. 그래서 아주 간단명료합니다.

 

이 주제를 주실 때, ‘이거 법문하라고 이 주제를 준 건가, 도대체 뭘 하라고’ 그러고 다른 큰스님은 다 거룩해요, 저만 이런 거예요. 그래서 ‘나 평민이라고 차별하시나’ 많이 웃으세요. 근데 거기다 이런 우리 정답이 “저희들이 마음이 큽니다.” 이래서 너무 감사하고, 우리가 원력이 적으면 저는 스님은 이 불교가 참 거룩한 종교예요.

 

불교는 모든 종교의 근본

 

한 두 달 전부터, “불교는 모든 종교의 근본입니다.” 제가 그래요. AI가 대장경 다 읽고, AI가 성경 다 읽으니까 거의 말이 비슷하대요. 그러면은 불교가 시대별로 앞서잖아요, 우리가 근본인 거예요. 그래서 자신 있게, “불교가 근본입니다.”

 

우리 스님들도, 불교의 말씀이 불교의 근본이 뭐예요? 욕심 그리고 전쟁 지금 전쟁하고 있잖아요. 21세기에 이 지혜로운 인간이 전쟁을 하다니, 몇십만 명을 의도적으로 죽이다니, 이게 어디 인간이 할 짓이야. 불교는 그 전쟁이 없어요. 불교는 끝없는 자비심, 끝없는 지혜예요. 근데 그걸 못하는 거는 불교는 아니다. ‘누구, 어느 종교다’ 하면 큰일 나잖아요, 남 비판하면. 우리는 비판을 안 해. ‘불교는 아니다.’ 그리고 불교가 그 모든 종교의 근본이다. 그런 자부심 가지셔야죠.

 

자부심만 갖고 아무 실천이 없으면 그것도 또 허당인 거예요. 우리가 이 세상을 허접하게 살아서는 안 되잖아. 허접하게 살지 않는 게 뭐예요? 원력을 딱 세우고, 그 길로 ‘불교는 모든 종교의 근본이다’ 앞서 있고 그리고 전쟁, 이 대한민국이 지금 전쟁이 터지면 우리 그냥 다 깨져버려, 다시 시작해야, 그런 일을 할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까 거기에 지혜로워라, 자비로워라, 서로를 차별하지 말아라, 이게 부처님 말씀이에요. 그리고 나의 욕심과 모든 걸 자꾸 내려놓아라.

 

제가 요즘 다니면서 제일 잘하는 것이 ‘100년을 사실 겁니까, 천년을 사실 겁니까?’ 우리 진관사 불자님들은 한 150년 사세요. 요즘 100세 시대라 하니까, 근데 제대로 살지 못하면 벌써 힘들어요. 그러니까 150년을 사시려면 지금부터 잘 정신 차려서 건강도 지키고, 마음도 내 주위도 잘 정리해서, 지혜롭고 자비롭지 않으면 100년 사는 것도 그것도 볼품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 불자님들이 100년을 한정하고 ‘100년을 잘 살자’ 하는 원력을 세우시는 거예요. 이 세상을 사는 모든 힘은 나의 원력에서 시작이 된다, 아셨죠?

 

그러고 우리가 살면은, 그래서 우리는 다 원력이 작아, 그걸 자꾸자꾸 크게 하고 진관사 불자님들은 마음은 이미 커, 거기다 무엇을 채울까를 하시면 되겠죠.

 

화엄경 이세간품 — 열 가지 유희(遊戱)

 

그래서 이런 부탁을 드리면서요, 저는 화엄의 대가인 줄 아세요? 왜 안 웃으실까 하하, 화엄경을 한 40년 읽었어요. 그래서 뭐 이런 말씀을 드리려고 제가 온 게 아니라, 화엄경에서 ‘무엇을 크게 하고 무엇을 작게 할까’ 말씀이 있을까 이렇게 찾으니까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잘 정신 차려 들어주세요. 제가 10분을 넘으면 쫓겨날 것 같아서요. 그렇습니까? 그렇게 하래요. 그러니까 시간은 더 안 주시니까, 11시 10분을 지나치면 쫓겨날 것 같아서.

 

그래서 제가 3월부터 지난 9월, 9월 초까지 화엄경 ‘이세간품(離世間品)’을 새벽마다 방송으로 쭉 공부를 같이 해 드렸어요. 뭐 다시듣기 하시면 이제 또 제가 어쨌든 나타납니다. 해서 말씀드리는데, 거기에 이세간품이라는 건 우리가 쭉 앞에부터 화엄경을 해서, 이제 이 혼탁한 세상을 떠나서 저 입법계(入法界), 부처님의 진리의 세계에 들어가야 되겠다, 이런 과정이에요. 세간을 떠나서 법계에 들어간다. 그럼 이 세간을 떠나려면 어떻게 해야 떠날 수 있느냐, 모든 부처님 말씀을 실천해야 돼요.

 

그래서 화엄경은 신해행증(信解行證)이거든요. 오늘부터 믿으시잖아요. 내가 이러한 큰 마음으로 작은 원력을 키우고, 불교는 모든 종교의 근본이고, 그 싸움을 그치는 것은 우리 모두 평민이야. 평민의 힘으로 지혜롭고 자비로우면 싸우지 않는다, 이 믿음. 아셨죠? 이 믿음이 흔들리면 불자가 아니에요. 그리고 그건 누가 하느냐, 내 마음에서부터 한다 하는 믿음, 그게 신(信)이에요.

 

그리고 해(解)는 잘 아는 거예요. 우리 역사도 알고, 세계 역사도 알고, 요즘은 손바닥 안에서 다 공부하실 수 있잖아요. 엉뚱한 거 뒤다보고 다니시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딱 필요한 것을 보고 정확히 아는 거. 요즘은 거짓도 많고, 그래서 내가 지혜롭지 않으면 엉뚱한 거에 휘말려요. 그러니까 꼭 바른 것을 정확히 이렇게 아는 것 이거 아주 간절히 부탁드리는 거예요. 그게 해(解)예요, 해석한다 해(解)자.

 

그다음에 세 번째가 행(行). 아무리 좋은 걸 알아도, 내가 몸소 실천하지 않으면 무엇에 쓰겠느냐. 어제 그랬어요. 오늘 불자로서 한순간을 착하고 바르게 살지 않으면 미래에 뭘 기대할 거냐, 내가 오늘도 제대로 못 사는데 미래에 뭘 기대하실 거예요? 이게 정확한 행(行)이에요.

 

우리 불자님들은 그냥 막연하게 다음 생에 천당 가려나 천당 가봐도 집이 꽉 차서 별로 들어갈 데 없어요. 차라리 극락정토에 가면, 가서 집을 지으면 돼요. 요즘 뭐 완성된 집을 몇천이면 사더라고요. 제가 주지 스님도 저를, 여기 건물을 잘 짓지만, 저도 12달, 1년 12개월에 두 채를 지었어요. 그래서 뿌듯해가지고 왔더니, 여긴 다섯 채를 지어놨더라고. 아, 나는 세 채만 보였어요. 뒤에 극락전에서, ‘아, 나 두 채인데’ 알고 보니 세 채를 더 지으신 거예요. 그래서 ‘아, 내가 졌다.’ 그래서 극락정토는 국토(國土)니까, 우리 불자님들은 넉넉한 마음으로 가서, 뭐 어느 회사 두 군데 세 군데서 저는 집 짓는 게 너무 힘들어서, 지어놓은 집 중에 제일 제가 좋아하는 집이 컨테이너 집이에요. 그거 하나 갖다 떡 놓고 살면 되잖아요. 근데 요즘은 더 좋게 그러니까 우리 불자님들은 가서 집 갖고 싸울 거 없이, 그냥 가서 주문하면 돼. 여기다 턱, 극락 자리 턱 붙잡고 그러고선 집 배달하라고, 그런 여유를 배우고 사는 것이 우리 불교예요.

 

그렇게 정확히 스님이 큰소리만 치고 집 한 채 안 사주고 이러면 이제 저도 할 말이 없는데, 어쨌든 그런 마음 그래서 오늘을 제대로 살아야 내일이 희망이 있다, 이게 행(行)이에요, 아셨죠?

 

우리 부모님들이 아이들한테 큰소리를 하시려면 잘 사시는 거예요. 모범으로 사시고, 아이들 힘든데 자꾸 소리만 지르면 어떻게 해요. 아이들이 너무 힘들면 가서 손 꼭 잡고, 맛있는 게 요즘 얼마나 많아요, 인스턴트만 사다 주지 말고 정말 몸에 좋은 거, ‘이게 몸에 좋다 카더라’ 이러고 부모님의 그 진실한 모습, 저는 제자 스님을 키울 때도 내 모습을 보고 나를 존중하든지 말든지 해야지, 말로 갖고 존중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내가 노력해요. 이렇게 보이고, 이렇게 보이고, 그러면서 삽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세간품에 이 세간이 혼탁하고, 이걸 딱 떠나려면 어떻게, 모든 바른 실천이 바로 서야 된다, 이 말씀, 이건 기억해 주시면 좋겠어요.

 

그래서 화엄경의 이세간품에 200가지 질문을 해요, ‘어떻게 하면, 어떻게 하면’ 우리가 거기 보현보살이 2천 가지로 답을 해줘. 하나의 질문에 10가지씩, 그래서 2천 행문(行門)이에요. 그러니까 난 그 경전을 읽으면서 너무 힘겨웠어요. 제대로 살려면 이 2천 가지를 실천하면 제대로 사는 거야.

 

거기 보면은 93번째 질문에 “어떤 것이 즐겁게 사는 겁니까?” 유희(遊戱)라는 단어가 나와요. 아이들 유희하죠, 뭐 하게 하고 유희는 한문인데, 그냥 즐겁게 노는 거, 오늘 우리 즐겁게 노는 거 아닐까요? 이 맑은 곳에 이 좋은 자리, 즐겁게 놀고 있어요, 그게 유희예요.

 

그래서 그 십종유희(十種遊戱)를 보여주시는데, 제가 그걸 다 오늘 법문 주제에 담고 싶었어요. 그래, 그게 뭐냐 하면은 아주 즐겁게 뭐든지, 우리 스님들 범패(梵唄)하고 어산(魚山)하고, 매일 즐겁게 노는 건데, 부처님, 우리 부처님 계시죠? 부처님이 계시고, 그 밑에 보살이 계시고, 성문·연각(聲聞·緣覺)아시나, 이제 공부 많이 하셔야 돼요. 저기 너무 우리, 학부형 아니 저 수험생 부모님이 얼마나 아직 젊으셔요, 여기만 자꾸 보고 이야기를 하는데, 그런데 그 유희는 즐겁게 노는 건데 부처님이 계시고, 그 밑에 보살이 계시고, 그 밑에 소승 성문·연각이 계셔요.

 

그러니까 부처님 몸에 성문·연각의 모습을 나타낸 게 유희예요. 우리가 어른들이 놀면서 아이 노릇하시잖아요, 똑같은 거예요. 우리 건강하면서도 아픈 척 연극하시잖아요, 그게 유희인 거예요. 그러니까 부처님처럼 거룩한 몸에 그냥 아이처럼, 저 아주 그냥, 아직 초등학교도 못 들어간 것 같은 그런 모습을 나타낼 수도 있다, 하실 수 있을까요?

 

그리고 더 예를 들면은, 나는 돈이 많은데 아주 가난한 사람이 있어요. 거기서 나 돈 많다고 뽀득뽀득하면 안 되지. 아까 평민 스님 앞에서 “내가 난 큰 스님이야” 이러면 되겠어요? 나도 평민 스님처럼, “아, 평민 스님, 그거 참 좋네. 저기 진관사에는 평민 스님도 있구나” 이런 거예요, 같이 맞춰주는 게. 알아들으셨죠? 여래의 몸에 저 아래 수준인 성문·연각을 나타내는 것 이게 진정으로 즐겁게 사는 유희다, 아셨죠?

 

그다음에 이제 네 가지인데, 오늘은 10분이 넘어가 버렸어요. 그러면 5분만 더 쓰겠어요. 그다음에는 부처님이 다 깨달으셨어. 그래 성정각신(成正覺身)이 부처님이 6년 고행(苦行)에 더 깨달으신 거기에, 보살이 몸을 나타내는 거. 보살은 누구세요? 우리가 다 보살이에요. 보살은 보디사트바(bodhisattva), 위로는 부처님이 되려고 노력하고, 아래로는 모든 중생을 편안하게 도우려고 하는 게 보살이에요.

 

그러니까 부처님이 정각(正覺)을 이미 이루셨지만, 부처님이 하시는 행(行)은 보살의 행을 한다, 이 말이에요. 우리 주지 스님 뵈면, 그래 누구한테든지 겸손하고 주지 스님이 뭐가 부족하겠어요, 소리 꽉 치면 되는데 우리 불자님도 힘(?) 소리 안 치셔요? 나한테 와서도 그냥 그러시고, 모두에게, 그리고 어려운 일 다 하려고 노력. 주지 스님이 그렇게 하니까, 우리 진관사 평민 스님까지 오늘 “평민” 소리를 평민 스님이 기가차겠네, 저렇게 평민을 잘 써먹을 줄 몰라. 평민 스님까지 다 공손한 거예요. 알아들으셨죠? 그게 정말 이 세상을 즐겁게 잘 사는 것이다.

 

괜히 그냥 으스대고 뻐기고 막 이게 유희가 아니에요. 부처님의 자리에서 가장 평민처럼 행동하는 것. 가장 많이 갖고 있으면서도 가장 가난한 사람에게 마음에 자존심 상하지 않게 잘 도와줄 수 있는 것. 또 반대로 ‘난 지금 가진 거 없지만은 원력을 가지고, 나도 저렇게 살아야지, 저런 부처님이 되어야지’ 이런 것이 유희인 거야. 즐겁게 이 세상을 사는 거, 알아들으셨죠? 제가 이거를 알아듣게 하시려면 1시간은 더 해야 돼요.

 

하심(下心) — 경계 없는 세상

 

근데 이제 그렇게 안 되니까는 그래서 딱 두 가지, ‘아, 우리는 부처님이 됐어.’ 그렇지만 거기에 정체되거나 고정되지 않고, 부처님이 될수록 더 낮은 대로, 강물이 흘러서 바다에 가듯이 더 겸손하고 하심(下心)하고 근데 ‘난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 그렇지만 부처님을 보니까 너무 거룩해, 오늘부터 난 부처님 되어야지, 부처님 되어야지’ 그러면은 큰 것과 작은 것의 경계가 무너져요. 불교는 경계가 무너져서 평등한 종교예요. 다 각자 잘났고, 잘났다는 게 나쁜 게 아니에요. 각자 자기의 자존, 자긍 이런 걸 갖고 계실 수 있죠. 내가 갖고 있는 그대로, 그렇다고 잘났다고 할 거 없잖아.

 

모든 사람에게 다 겸손하고 마음을 낮추는 걸 하심(下心)이라고 그래요. 그러면 무슨 싸움이 있고, 무슨 원망이 있고, 뭐가 불편이 있겠어요? 우리 오늘 스님도 불자님도 다 같이 경계를 무너뜨리고 대립의 세계잖아, 높고 낮고, 크고 작고, 있고 없고 이걸 다 평탄하게 하는 것이 누구 스님이에요? 평민 스님이에요. 오늘 우리 모두 진관사 평민 스님으로 돌아가자, 그렇게 하면 되겠죠?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