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여러분 반갑습니다. 조금 전에 맑고 아름다운 어린이들의 음악을 들어서, 여러분들 지금 마음이 활짝 열려 있을 것 같아서 너무 좋습니다. 열려 있는 마음에 여러분들이 이 법문을 받아들이면 100% 자기 것이 되겠죠. 그죠. 오늘은 여러분들이 이제 일반적으로 사찰에 가면 “염불한다.” 이런 소리를 많이 듣고, 아마 하시고 그럴 겁니다. 그래서 그 염불에 대한 부분을 오늘 좀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우리가 이제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병이 있습니다.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좀 병이라고 이름 붙이기는 어려운, 그 외로움의 병이 있죠. 이게 무슨 소리냐 하면, 돈이 아무리 많아도, 또 향락을 즐겨도, 뭔가 꽉 채워지지 않는 뭔가 있죠. 그것을 우리는 이제 그 회향병(懷鄕病)이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다. 여러분이 태어나서 고향을 떠나서 타지에 가서 살게 되면, 문득문득 자기가 태어났던 그 고향을 그리워합니다. 만약에 평양이나 저런 이북에서 태어나셨던 분이 6.25라는 그 전쟁을 통해서 어쩔 수 없이 이남으로 내려왔다가 다시 고향에 못 돌아가는 이러한 분들은 늘 그 고향에 대한 그러한 그리움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 것처럼 그럼 우리가 늘 뭔가 허전하고, 돈을 벌어서 마음에 꽉 찬 것 같은데,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뭔가 허전하고 이런 것은 무엇 때문이냐. 우리 마음의 근본 생명의 근원을 그리워한다. 그러니까 생명 자체의 근본, 이것을 이제 불교에서는 불성이다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진리에서 파생된 존재입니다. 그 진리에서 파생된 존재가 진리를 향하여 가지 않으면, 뭔가 늘 아쉽고, 그 진리와 하나가 되었을 때 비로소 만족하고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광명에서 파생된 존재인데, 광명을 향해 가지 않고 어둠 쪽으로 향해 가면 뭔가 편안하지 않아, 뭔가 이건 아닌데 하는 이런 것이 있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경로를 통하든 진리를 향해서 가야만 됩니다. 그것이 우리가 염불을 한다, 참선을 한다, 이러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가 이제 살아가면서 수행해 나가는 겁니다. 그것이 뭐와 같으냐 하면, 물고기가 물을 떠난 다음에 다시 물로 돌아가지 않으면, 그 물고기에게는 행복이라든가 자유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인간이 그와 똑같은 거예요. 진리를 향해서 한 발자국이라도 나아가서 거기에 대한 조금이라도 만족감을 느낄 때, 우리는 진정한 만족감을 느끼는 겁니다. 세속에 여러분이 살아가면서, 무슨 쇼핑을 한다, 무슨 음악회를 간다, 영화를 본다, 뭐 여러 가지 즐거움을 느끼지만, 진정한 즐거움은 느끼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이제 실제로 사찰에 와서 기도를 해서 만족한 기도를 했을 때, 정말 그 만족감은 그런 영화를 보거나 쇼핑을 하거나 이러한 만족감보다 훨씬 더 만족감을 느끼는 것을 본인들이 스스로 자각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도 이러한 부분을 고민을 하신 겁니다. 어떻게 하면 이 허전함, 이 허전함을 채우고, 어떻게 하면 영원히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그 고민을 깊게 한 결과로 출가해서 수행을 하시고, 수행을 한 결과로 깨달음을 얻으셨죠. 그래서 얻은 깨달음의 그 내용을 당신 혼자만 가지신 게 아니라 일체 중생과 함께 공유를 했습니다. 우리에게 다 나누어 주시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가르쳐 주신 가르침을 우리는 따라가는 사람들이 불교 또 불자, 우리 스님들과 이 자리에 앉은 여러분이거든요.
그래서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하든지 우리의 근본 생명을 향해서 가야만 하고, 그 근본 생명을 찾아야만 됩니다. 그런데 그 근본 생명을 찾아가는 길을 부처님께서 여러 가지로 제시를 해 주셨습니다. 그 여러 가지로 제시해준 그것이 해인사에 지금 보관되어 있는 팔만대장경이라는 그만큼 부수가 많은 그러한 가르침이 존재하고 있거든요. 그중에서, 그중에 하나가 염불이에요. 그래서 이제 이 염불이라고 하는 것은 수행 방법 가운데에 가장 수월한 방법이다, 이행도다 그럽니다. 그래서 더더욱이 말세 중생에게는 이 염불의 수행법이 가장 적합한 수행법이다. 이렇게 이제 모두 선사 스님들이나 모든 분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은, 염불(念佛)이라고 하는 것은 이제 그 글자 그대로 생각 염자, 부처 불자입니다. 부처님의 뭘 생각한다라는 건데, 부처님의 명호를 생각을 하게 되면은 부처님께서 가피력으로 염불하는 사람에게 가피를 주셔서 이끌어주십니다. 우리가 언덕을 올라갈 때 막 헉헉거리고 힘이 들어 뻘뻘 맬 때, 앞에서 누군가가 손을 잡아서 당겨주면 훨씬 수월하잖아요. 수월하게 언덕을 올라갈 수가 있는데, 혼자서 그 언덕을 올라가려면 굉장히 힘이 듭니다. 또 한 가지는 우리가 태평양을 건너야 되는데, 태평양을 건너는데 내가 스스로 배를 만들어서 그 배를 또 바다에 띄워서 배를 운전하는 기술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조그마한 배를 몰고 가다가 풍랑이라도 만나게 되면 목숨 보장을, 보장받을 수가 없잖아요. 건너기는커녕 중간에 가다가 그냥 빠져서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됩니다. 그런데 큰 해운회사가 운영하는 큰 배에 뱃삯만 내면 목적지까지 편안하게 데려다 준다. 이것이 바로 염불의 매력입니다. 그래서 큰 해운회사를 운영하는 분들은 부처님이고, 우리는 뱃삯만 내면 돼요. 그 뱃삯이 뭐냐? 염불입니다. 이렇게 수월하기 때문에, 가장 수월한 수행법이 염불이다 이 말이죠.
그리고 물론 이제 우리나라 지금 현재 종단이 조계종입니다. 조계종은 선종이에요. 그래서 이 선종은 가장 빠른 경절문입니다. 바로 직절로 올라가지, 삥삥 돌거나 이런 거 전혀 없어요. 여러분들 아마 성불도 놀이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해보신 분은 보시면은 경절문이 있고, 그렇지 않은 문이 있는데, 그렇지 않은 문은 지옥으로 갔다가, 아귀로 갔다가, 인간에 갔다, 천상에 갔다가, 말이 이렇게 삥삥 돌아요. 근데 경절문은 그냥 바로 뚫고 올라가서 불자리로, 보살이나 불자리로 올라가거든요. 근데 그만큼 빠른 반면, 그만큼 힘듭니다. 공부하기가. 여러분이 빠른 길, 돌아가는 길 말고 빠른 길로 가면 언덕바지는 더 가파르고 힘들잖아요. 그 대신 빠르기는 빠르지. 그런데 다리가 시원찮은 사람이 그 언덕바지로 빠른 길로 간다고 하다가 돌아가는 것보다 더 더딜 수도 있는 법이죠.
그래서 이 염불이라는 것은 정말 누구나 할 수 있는, 꼭 머리를 깎고 출가하지 않아도 세속에 계시면서 얼마든지 해서 스님들보다 훨씬 앞설 수 있는 수행 방법이 바로 이 염불입니다.
그러면 이 염불을 하는데, 그럼 무엇이 필요하냐. 세 가지가 필요해요. 첫째는 믿어야 된다. 부처님이 나를 반드시 이끌어주실 거고, 부처님이 하신 말씀은 한마디도 거짓말이 없다라는 것을 확실히 믿어야 돼요. 그다음에 두 번째는 원력이 있어야 됩니다. 목표가 있어야 된다. 나는 반드시 염불을 해서 이 경지까지 갈 거다. 만약에 여러분이 부자가 되고 싶다 그러면, 부자가 될 때까지 그 목표를 가지고 끊임없이 나무아미타불을 하든, 관세음보살을 하든 성취를 할 때까지 하는 겁니다. 그게 원력이에요. 그다음에 세 번째는 그 원력이 성취될 때까지 밀고 나가는, 꾸준하게 해야 되는데, 오늘 하루 하다가 ‘아이고 힘들어, 나 못해. 내일 하지 뭐.’ 그다음 내일 되면 또 ‘아이고 오늘은 우리 손자 봐줘야 되고, 딸네집에 뭐 김치 담아줘야 되고, 김장해줘야 되고 뭐 해줘야 되고.’ 그러다가 뭐 못하는 거죠, 뭐. 그러니까 어떤 일이 있든 꾸준하게 할 수 있는 이 실천행 이 세 가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면 염불을 하는데, 나는 어떤 부처님을 선택해서 할 것인가. 이것도 중요하죠. 보편적으로 우리나라 불자님들은 관세음보살님을 많이 합니다. 왜냐하면 관세음보살님은 무엇이든 구하고 원하는 것은 다 소원을 들어준다, 이것이 관세음보살님의 원력이거든요. 중생을 제도하는 방편입니다.
그런데 제가 여러분에게, 물론 관세음보살님을 해도 목표 성취는 합니다, 하는데 그중에서도 나무아미타불을 여러분들이 하면 좋겠다. 나무는 귀의한다는 뜻이고, 계속 염불을 하는 분은 그냥 아미타불 아미타불 하셔도 됩니다. 이 아미타불을 왜 여러분에게 권해 드리느냐 하면, 아미타라는 그 아미타불을 번역을 하면 무량수 무량광이에요. 한량없는 광명과 한량없는 수명이다. 우리 내 자신의 근본 생명의 본체를 말하는 겁니다, 아미타불은. 그래서 이 아미타 부처님을 바로 이제 염불을 하게 되면, 그러니까 이 소리에도 에너지가 얼마만큼 있느냐가 달라요. 나무아미타불이나 석가모니불이나 미륵불이나 불자가 붙은 단어는 보살의 발음보다 에너지가 더 강하답니다. 그것을 이제 저도 몰랐는데, 어떤 비구니 스님이 이제 열심히 공부를 해서 어느 분이 자기가 깨달았다고 하시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분이 그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불자님들이나 스님들이 수행을 하고 기도를 하는 데 있어서, 모든 이제 우리나라는 관음 기도가 많이 이렇게 전파가 돼서 관음기도를 하시는 분이 굉장히 우리 불자님들이 많은데, 불자가 붙은 기도를 해야 에너지가 훨씬 강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석가모니불을 하든, 아미타불을 하든, 미륵불을 하든, 불자가 붙은 기도를 하는 게 훨씬 좋다 이렇게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근데 들어보니까 맞는 것 같아요. 그리고 여러분이 관세음보살님의 기도를 하는 근본 그 마음이 뭐냐 하면은 뭔가를 성취하고 싶다. 내가 뭐 부자가 되고 싶고, 건강하고 싶고, 우리 아들이 사업 잘 되게 하고 싶고, 아들을 위해서 기도해주고 싶은데 관세음보살을 하면 그게 다 될 것 같다. 그래서 관세음보살님을 선택해서 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아요. 그런데 나무아미타불을 한다고 해서 그런 여러분이 생각하는 게 성취가 안 되는 게 아니다 이 말이에요. 더 빠르다, 더 잘 된다 이런 말씀을 드립니다.
그래서 이 아미타라고 하는 이 단어 자체가, 우주 공간에 충만한 광명과 우주에 가득한 우리의 그 진리의 자체를 아미타라고 인격화시킨 것이 아미타불입니다. 아미타불은 진리 자체를 말하는 거예요. 물론 관세음보살님도 진리와 하나 된 분이지만은, 이 아미타불은 단어 자체가 진리를 나타내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갖고 있는 불성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시간의 영원성과 공간의 무한성을 다 내포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아미타불을 열심히 여러분들이 하게 되면, 나중에는 어떻게 되느냐. 내가 아미타불이 됩니다. 그래서 옛말에도 이런 말이 있습니다. 10년을 아미타불을 불렀더니 내가 아미타불이 되었다. 처음 시작할 때는 내 바깥에 있는 아미타불을 불렀는데, 10년을 하고 보니까 내 자신이 아미타불이 된 거예요. 이게 이제 완전 성취를 본 거죠. 내가 부처님이 됐으니까.
그래서 이제 이 부처님의 명호 속에는 무량한 공덕이 들어 있습니다. 들어 있어서 불교가 뭔지, 사성제가 뭔지, 팔정도가 뭔지, 아무것도 몰라도 그 염불만 열심히 하면 공덕이 쌓여서 여러분의 업장이 다 녹고,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가면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기쁨이 아주 샘 솟듯이 퐁퐁퐁퐁 솟아납니다. 그런 경지까지 이제 여러분이 가야 되죠. 그래서 참 여러분이 이렇게 염불을 해서 마음이 고요해지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가슴에서 기쁨이 솟아납니다. 이렇게 솟아나는 기쁨의 행복은 물질적으로 얻는 행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직접 한번 해서 스스로 그 기쁨을 느껴본 사람은, 단 1분만이라도 느껴본 사람은 하지 말라고, 밀어서 하지 말라고 스님들이 해도 죽기 살기로 합니다. 본인이 직접 체험했기 때문에.
그래서 이제 제가 누구 어떤 신도님에게 기도를 줬거든요. 아미타불을 하루에 3만 독씩 하라고. 그래서 하루에 3만 독씩 해서 그이가 천일을 채웠어요. 천일을 채우고 그다음에 내가 그랬거든요. 그 보살님이 연세가 좀 있고 해서 “보살님이 이제 천일을 채웠으니까, 이제 그냥 안 해도, 그렇게 하루에 3만 독씩 안 해도, 앉으나 서나 나무아미타불이 될 테니까 그만 하세요.” 했더니 안 된대요. 그래가 또 천일 하시고, 삼천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그 보살님이 나만 보면 나보고 그리 고맙대요. 그래서 나는 또 도로 그 보살님 보고 “보살님이 그래 실천을 해줘서 너무 고맙다고.” 아니 일러줘도 안 하면 어쩔 수가 없잖아요. 근데 그렇게 본인이 하니까, 했으니까, 그렇게 하면서 늘 너무 본인이 좋은 거예요. 좋아한 거예요. 그야말로 뭐 이루 말할 수가 없이 좋은 경지를 본인이 체험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처음 천일을 할 때 끝부분에 가서 이 독수를 못 채운 거예요. 날짜 안에 못 채우니까, 이 보살님이 그냥 24시간 이제 나무아미타불을 하고, 아들이 밥해 먹고, 남편이 청소해주고, 그래서 24시간 해서 겨우겨우 이제 이게 그 독수를 채운 거예요. 그때가 가장 좋았다는 거예요. 이 좋았다는 게 뭐 남편이 청소해주고 아들이 밥을 해먹어서 좋은 게 아니라, 몰아서 계속 염불을 하니까 이제 그때야 비로소 본인이 망상이 스러지고 그 삼매의 경지를 그때 이제 체득한 겁니다. 그래서 그 보살님이 그렇게 막 몰아서 그렇게 기도하실 때 로또 당첨이 됐습니다. 그래가지고 나보고 뭐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참 이 보살님이 어리석은 게, 사람들이 로또 당첨돼서 찾으면, 누가 그렇게 당첨된 사람을 뭐 전화를 해서 막 괴롭힌다는 소리를 들었나 봐요. 그리고 그걸 포기를 했어요. 그러니까 아들이 한 달을 몸살을 하더랍니다. 그거 포기를 하니까. “그거 찾아서 니가 다치는 것보다 낫다.” 그래서 내가 나중에 그 소리를 들었어요. 포기한 다음에 내가 그 소리를 듣고는, “그러면 사찰에 보시라도 하면 사찰의 불사라도 하면 복을 짓지, 왜 그걸 포기하냐” 하니까, 포기한 3개월 후에 나한테 말했어요. 그러니까 그건 벌써 떠난 배죠.
그래서 우리가 이제 이렇게 열심히 염불을 하면, 지극한 마음으로 염불을 하게 되면 자기 안에 불성이 깨어나고, 지극한 마음으로 염불을 하게 되면 축복의 문이 나한테 다가옵니다. 다가오라고 안 해도 모든 게 저절로 풀립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제 여러분이, 지금 이 자리에 앉은 분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여러 가지 고통도 겪었고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을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일단 수행을 해서 마음이 고요해지면 바깥 경계가 나를 흔들지 못합니다. 그 정도까지만 가면 어떤 경계가 오든 내 마음은 조용하고 편안해요. 이게 행복이지 다른 게 행복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그래 “너 네가 이래 초하루에 와서 기도하니까 내가 복을 줄게” 하고 복주머니를 내려주신다거나 행복 주머니를 내려주시는 게 아니라, 여러분이 본래 갖고 있는 불성 속에, 갖고 있는 무량한 공덕과 무량한 복을 기도를 통해서 꺼내서 자기가 쓰는 거예요. 여러분도 그렇고, 우리 본래가 다 무량한 법과 무량한 공덕을 지금 다 갖고 있습니다. 있는데 왜 못 꺼내 쓰느냐. 번뇌라는 망상이 덮어씌워서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아요. 그러니까 이제 그것을 정화시켜서 깨끗하게 해서 내가 이제 그것을 꺼내서 써야만 된다 이 말이죠.
그래서 염불하고 사경하는 이 지극한 마음 때문에 산란한 마음이 다 없어지고, 내 마음의 기쁨이 이렇게 옹달샘에 물 솟듯이 퐁퐁퐁퐁 솟아나는 이제 그러한 경지를 여러분들이 만들어야 되는데, 그래서 이제 잠들기 전에 염불을 하면 밤에 산란한 꿈을 꾼다거나 하지 않고 푹 잠을 자게 되고요. 또 아침에 그렇게 푹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정신이 맑고. 아침에 일어나서 염불을 하게 되면 하루종일 정신이 맑고 기분이 좋고 뭔가 모든 것이 척척되는 그런 느낌이 들 겁니다. 그러면 그런 기쁘고 좋은 하루하루가 이어지면 그게 행복이지 뭐 행복이 뭐가 따로 있나요? 그게 진정한 행복입니다.
그래서 이제 이러한 말씀을 드릴 때 여러분이 일반적으로 하는 기도하고 연관이 돼서, 제가 이제 이 기도에 대한 것도 말씀을 조금 이렇게 드리고 가려고 합니다.
우리 불자님들하고 대화를 해보면 “아이, 스님 저는 하루에 기도를 1시간 합니다. 2시간 합니다” 하는데, “그럼 뭘 합니까?” 하면 천수경하고, 반야심경하고, 광명진언하고, 금강경 읽고, 뭐 하고, 뭐 하고, 뭐 하는 게 한 10가지 정도 돼요. 그런 기도는 별로 힘을 얻지 못합니다. 그거는 뭐냐. 욕심으로 끌어모은 기도거든요. 반야심경 읽으면 좋다니까 반야심경, 금강경 읽으면 좋다니까 금강경, 광명진언 읽으면 좋다니까 광명진언, 그게 자꾸 보태다 보니까 나중에 숫자가 많아진 거죠. 그죠? 솔직히 여러분들 자신이 뒤돌아보세요. 이 자리에 계시는 분들이 그렇게 기도하신 분들이 아니신가 모르겠네요. 그런 기도는 물론, 천수경도 반야심경도 다 공덕이 있긴 하지만, 그런 것은 별 힘을 내지 못합니다. 그런 기도는 올바르고 좋은 기도가 못 돼요. 왜? 욕심으로만 뭉친 기도이기 때문에 별 그게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진정한 기도냐. 만약에 나무아미타불을 선택했다. 눈 뜨면서 아미타불을 하면 잠자기까지 중간에 정구업진언 이런 거 섞을 거 하나도 없어요. 그냥 아미타불 아미타불, 앉으나 서나 아미타불. 밥을 먹으면서도 아미타불. 그래서 이 오매일여(寤寐一如)라는 소리가 있습니다. 이 오매일여라는 것은 깨 있을 때나 잠잘 때나 일여가 돼야 된다. 깨어 있을 때 아미타불 하면 잠자면서도 아미타불이 돼야 된다. 그 정도 되면 제가 말하는 지금 가슴속에 기쁨이 펑펑 쏟는 경지가 됩니다. 그때까지만 여러분들이 힘들어도 끌고 나가야 되는 거예요.
근데 왜 여러분들이 염불을 하는 게 힘드냐면, 다생겁래로 이 염불을 안 하고 살았거든요. 번뇌 망상만 죽기로 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이 우리 삶을 가만히 보면 번뇌 망상하면서 사는 걸 일종의 즐기고 살아요, 우리는. 기도하다가 딴 생각하면 오히려 수월하잖아요. 그죠. 근데 기도를 계속 이어가려면 그만 힘이 드는 거야, 그 번뇌망상을 안 하고 하려면은. 그런데 사실은 번뇌 망상 때문에 내가 괴로운 건데, 우리는 도로 번뇌 망상하는 게 즐거운 거야. 즐겁다고 생각하는데, 그거는 올바로 가는 길이 아니다 이 말이죠.
그래서 부처님 당시 때에 수보리존자가 계셨는데 그분이 이제 그 수행하는 수행처, 이제 꾸띠를 어느 신도님이 지어주셨다는 거예요. 근데 이제 이 꾸띠라는 게 뭐냐 하면은 스님들이 수행하는 요즘 말로 말하자면 방입니다. 방. 근데 이제 지금도 남방불교에는 다 한 분 한 분 수행처를 따로따로 지어서 그걸 꾸띠라고 해서 수행을 해요. 우리 한국의 수행처하고는 조금 제도가 좀 다르거든요. 그래서 부처님 당시 때도 수보리 존자에게 어느 신도가, 꾸띠라는 건 이제 그 수행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드리는 건데, 다른 게 아니라 이제 풀을 이렇게 해서 우리나라 옛날에 그 짚으로 엮어서 지붕 이을 때 이렇게 엮는 거, 연세 좀 드신 분은 좀 아실 겁니다. 이제 그런 걸로 풀을 엮어서 이렇게 벽을 치고 위에 이제 지붕을 덮어드리는 건데, 그 꾸띠를 지어주는 신도님이 아마 시간이 없었던지, 무슨 사정이 있었든지, 벽만 치고 지붕을 미처 못 덮었다 이 말이에요. 못 덮은 상태에서 수보리 존자가 거기서 이제 수행을 하는데, 3개월 동안 비가 안 와요. 그래서 난리가 났죠. 요즘 같으면 댐도 있고 뭐 어떻게 하지만, 그때 당시 3개월 동안 비가 안 오니까 막 난리가 났습니다. 그 지방만. 그 지방만 비가 안 와. 그래서 여러 가지로 연구를 하고 왜 비가 안 오나 다 해봤더니, 결국은 뭐냐 하면은, 수보리 존자가 계시는 그 지붕을 안 덮어서 하늘에서 수보리 존자가 비 맞을까 봐 비를 안 내리는 거야. 천신이 비를 막고 안 내려. 그래서 3개월 동안 비가 안 왔답니다. 그래서 야단이 난 거예요. 여러분도 염불을 해서 하늘이 여러분을 도와줘서 여러분의 생각을 따라서 비가 안 왔으면 좋겠다 하면 안 오고, 왔으면 좋겠다 하면 오는 그런 경지까지만 가면, 그 뒤는 걱정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복 달라면 복이 오고, 수명을 달라 하면 수명이 올 거고, 저절로 다 이게 순환이 되고 돌아간다 이 말이야. 그 경지까지 갈 동안까지만 열심히 해봅시다. 해보시라 그 말입니다.
수보리 존자 부처님 당시 때까지 갈 것도 없이, 여러분 일타 큰스님은 아실 겁니다. 일타 큰스님의 할머니, 할머니가 10년 동안 나무아미타불 해서 정말 힘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그 공부한 힘을 보고 47명이 출가를 했습니다. 그중에 한 분이 일타 큰스님이세요. 그 할머니가 10년 동안 나무아미타불 해서 미래를 훤히 알아. 그래서 동네 사람한테 “너는 오늘 무슨 일이 있을 테니까 뭐 준비해라, 뭐 해라”, 또 아들 보고 “오늘은 너 공장에 불이 날 확률이 있으니까 미리 물 떠다놓고 옆에 집에 불 나면 다 미리 불이 번지지 않도록 조심해라”, 이렇게 하니까 온 동네 사람이 이 할머니를 부처님 모시듯 모셨잖아요. 그래서 그러한 신통력을 보고 일타 큰 스님 그 권속이 47명이나 출가를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에요. 부산에서도 한 40년 전에 어느 분이, 이분은 나무아미타불을 한 게 아니라 관세음보살을 했어요. 관새음보살을 해서 어느 경지까지 올랐습니다. 그래서 그 아들들이 이 어머니를 부처님같이 모시는 거예요. 60 먹은 아들이 80 먹은 어머니를 업고, 초하루마다, 보름마다 절에 오는데, 요즘 같으면 택시도 있고 뭐 많죠. 그런데 그때 당시는 교통도 불편하고 하니까, 어머니가 절에 오는데 택시나 이런 게 없고, 또 택시가 온다 해도 또 걸어 올라가야 돼. 그러니까 아들이 어머니를 업고 절에까지 와서, 어머니가 기도 참석 다 하고 내려가시면 업고 내려오고, 아들이 어머니를 부처님 같이 모시는 거예요. 왜? 어머니 그 기도 성취에 감격을 했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그 보살님이 그러셨다는 거예요. “스님. 이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운데 이렇게 아름답고 이렇게 좋을 수가 없는데, 왜 사람들은 그렇게 찡그리고 사는지 모르겠다.” 공부를 해서 경지에 오르면 그렇게 좋은 겁니다. 이 세상에 무슨 여러분들이 그 세속에서 좋아하는 제일 좋고 향락을 누리는 것이 제일 좋은 게 어떤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마는, 그 즐거움은 비할 바가 아니에요. 이 세상 모든 게 풀잎 하나 모든 게 그냥 그렇게 아름답고 그렇게 좋을 수가 없는 거예요. 여러분이 기도를 해서 조금만 힘을 얻게 되면 그 기쁨은 그 어디에도 비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불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는 모든 분들께 즐거움과 행복을 주기 위한 가르침이지, 고통을 주기 위한 가르침이 아니에요. 그래서 이 세속의 분들이 출가한 스님들을 그 자식으로 둔 부모님들이, 출가하면 힘들고 어렵다고 안 보내려고 막 갈 때 눈물 흘리고 울고불고하는데, 사실은 그거 잘못된 겁니다. 스님들처럼 행복하게 사는 사람 없어요. 우리 스님들 다 행복하게 살죠. 그죠? 이 신도님들 사는 거에 비하면. 우리 스님들은 신도님들이 바라보는 스님들의 생활하고는 다릅니다.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지 모릅니다. 제가 여기 법문을 하느라고 이런 소리를 하는 게 아니라, 제가 나이가 좀 많아요. 근데 제가 이제 지금 이렇게 살면서 정말 행복하거든요. 그래서 제가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만약 출가를 안 했더라면 이 나이에 이렇게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절대 없을 거야.’ 이렇게 자부하고 삽니다. 너무 좋아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힘들더라도 염불을 자꾸 해보십시오. 그러면 조금씩 조금씩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지금 마음도 불편하고 이런 문제가 있다면은 무조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무조건 시작해 보세요. 시작해서 걱정 근심이 여기에 딱 들어왔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로 누르는 거예요. 걱정 근심이 생겼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을 하면 어느샌가 그게 해결이 돼요. 원리가 그렇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우울증 앓는 환자를 실제로 몇 사람을 지금 현재 고쳐줬거든요. 우울증이 있는 사람에게 아미타불을 시켜서 한 한 달 보름 내지 한 달쯤 되니까 우울증이 싹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고친 사람이 몇 사람이 되고, 한 30년 전에 이제 어떤 처사님이 치매가 걸렸어요. 걸렸는데 이 치매도 종류가 아주 여러 가지인가 봐요. 그래서 이 처사님이 걸린 치매가 어떤 치매였느냐면은, 홀라당 벗고 동네를 뛰어다니는 그런 치매라. 그러니까 가족들도 감당을 못하고, 병원에서도 감당을 못해. 왜냐하면 그분이 체력이 아주 좋고, 키도 크고, 몸집도 크고, 이런 분이 막 그렇게 하니까, 병원에서도 아무리 침대에다 이거 묶어놓고 해도 가만 안 있으니까, 힘이 원체 세니까, 다 막 하고 온 병원을 돌아다니니까 병원에서도 제발 좀 퇴원해 가라고. 그래 할 수 없이 퇴원해 왔는데도 집에서도 이거 뭐 감당이 안 돼요. 그렇게 한 사람을 누가 감당을 하겠습니까? 그래 나한테 왔어요. 와가지고 어떡하면 좋겠느냐. 제가 뭐 의사입니까? 뭡니까? 어떤 도리가 없잖아요.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계속 나무아미타불을 하는 그 테이프를 조계사 앞에 가서 사서 24시간 환자가 들을 수 있게끔 틀어놔라 그랬더니, 3일 만에 그 증세가 가라앉아서 그 나머지 가족이 이제 이렇게 그 증세만 가라앉아도 살겠다는 거예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는데. 그래갖고 이제 돌아가실 때까지 계속 그 아미타불 그 소리를 들려드리고 하니까, 얌전한 치매가 돼가지고 굉장히 그 가족들이 수월하게 해서 이제 얼마 후에, 한 6개월 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이 나무아미타불 부처님의 가진 그 소리의 공덕이 무한합니다. 그래서 우리 불자님들은 죽기 살기로 한번 해보세요. 그래서 옛말이 있잖아요. 노는 입에 염불을 한다. 잘 아시네. 저보다 더 잘 아시네. 그러니까 그렇게 이제 염불을 자꾸 한번 해보십시오. 그래서 이 염불이라고 하는 것은 크게 얻는 것입니다. 이 크게 얻는 거다라는 것은 크게 얻는 것에 작은 것은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어요. 그러면 작은 것은 다 된다라는 겁니다. 이 크게 얻는다는 것은 이제 성불을 한다라는 것인데, 이 여러분들이 원하는 복 받아서 부자가 되고, 건강하고, 수명이 길어지고, 사업 잘 되고 이런 것들, 이런 것들은 그 작은 것이에요. 그래서 큰 것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작은 것은 지절로 다 된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래서 이제 이 염불하는 한 생각만 끊임없이 이어갈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근데 그게 끊임없이 이어갈 수가 없어. 한 나무아미타불을 하면 또 딴 생각나는 거예요. ‘아이고 우리 손자가 넘어졌나.’ 또 뭐 좀 하다가 보면 ‘아이고 내가 가스 잠그고 왔나.’ 지금도 이 말 들으면서 딴 생각하고 계시는 분 많을 거예요. 그죠. 생각이 그저 수시로 솟아올라 오듯이 온다 이 말이죠. 그러니까 그걸 자꾸 잠재우는 겁니다. 근데 이제 공부하는 이 비결 중에 가장 좋은 비결이 뭐냐. 참선하는 스님들도 그렇습니다. 참선을 하는 스님들은 이제 화두를 들고 하는데 화두하다가 딴 생각이 났다. ‘내가 왜 딴 생각하고 있지.’ 이러면 딴 생각하고 있지 하는 그것도 딴 생각이야. 그러니까 그 망상이 일어났다는 걸 아는 즉시 바로 화두를 잡아야 되고, 염불하는 사람 역시 나무아미타불하다 딴 생각 났으면 ‘내가 딴 생각 났구나 나무아미타불’ 바로바로 나무아미타불을 잡는 게 이 수행의 비법입니다.
그래서 이제 이러한 것들이 다 성취가 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내 마음은 전지전능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게 불성이거든요. 그래서 전지전능한 힘을 갖고 있는데 그 전지전능한 힘이 힘을 쓸 수 있으려면은 그런 망상이 다 없어지고, 오로지 하나의 생각으로 모아지면 내가 갖고 있는 전지전능한 힘이 발휘가 되고 쓸 수가 있어요. 근데 그게 안 되기 때문에 지금 우리는 이렇게 고통을 당하고 힘들게 살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오로지 염불의 생각만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어떤 마장도 생기지 않고, 어떤 병도 침범할 수 없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런 것을 여러분들이 확실하게 믿고 염불을 하시면 되는데.
이제 중국 청나라 시대 때 광서성에 철산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번대라는 직책을 갖고 있었어요. 이 번대라는 직책은 그 성에서 두 번째 세 번째로 높은 자리였다 합니다. 근데 이제 그 당시 광서성에 토착으로 자리잡고 있던 그 도적떼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그 도적떼를 토벌을 하려고 계획을 세워서 이 사람이 이제 도적들을 토벌하는 사이에서 그 수많은 도적들을 죽이게 됐다 이 말이에요. 그래서 이제 살생을 많이 하게 된 겁니다. 그래서 이제 이 사람이 그런 일이 있고 한 4년 후에 어느 날 갑자기 병이 났어요. 병이 났는데 눈만 감으면 시커먼 어느 벽돌로 만든 큰 공간 같은 데 들어갔는데, 수많은 그 죽은 사람들이 막 이 사람한테 핍박을 하고 달려드는 겁니다. 그래서 무서워서 눈을 감을 수가 없어. 눈만 감으면. 그러니까 눈을 감을 수 없어서 눈을 뜨고 만 3일을 눈을 못 감고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니까 이 명만 붙어 있지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러니까 그 부인이, 그 아내가 보다 못해서 “여보 그러면 아미타불을 한번 불러보시오. 그러면 좀 나아질 수 있지 않겠냐.” 그래 뭐 급하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고, 부인이 그러니까 이제 아미타불을 죽기 살기 했어요. 그러니까 얼마 하지 않아서 그런 증세가 없어지고 잠을 푹 자고 그 증세가 나아서 죽을 때까지 편안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제 이런 영험담을 듣는 게 문제가 아니라, 여러분이 이런 것을 확실하게 믿고, 여러분이 이제 실제로 실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제 이 불교라는 것은 자기실현의 가르침이고 대안락의 법문입니다. 이 불교는 고통을 여의고 이고득락이 불교의 근본 목표입니다. 고통을 여의고 즐거움을 얻게 해주는 그런 가르침이 불교다 이 말이에요. 그래서 요즘 긴장과 불안으로 이어지는 이 현대 시대에서 이 참선이라든가 염불이라든가 이러한 수행법은 정말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삶의 활력을 되찾아주는 이제 그러한 수행법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명상이 굉장히 지금 세계적으로 유행을 하고 있거든요. 왜냐. 물질적인 것은 많이 전 세계적으로 지금 좋아졌는데, 그 반면에 정신적인 문제가 생겨서 지금 많이 고통을 당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 불교는 마음을 편안하게 해줘서 행복을 실제적으로 느낄 수 있게끔 해주는 그러한 역할을 하는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열심히, 우리 불자님들은 스님들의 지도를 통해서 열심히 이제 실천을 해서 삶에 늘 기쁜 생활을 하고, 또 삶의 지혜가 생깁니다. 그렇게 염불을 열심히 하게 되면 기쁨도 기쁨이지만은, 지혜가 생겨서 내가 지금까지 살았던 건 이게 잘못 살았고, 이렇게 이렇게 살아야 잘 살겠구나 이렇게 되고, 돈 버는 것도 멍청하면 돈을 못 법니다. 지혜로워서 벌은 돈을 어떻게 투자하고, 그 투자한 돈을 또 투자하고, 이래야 부자가 되지, 매달 받는 월급만 따박따박 받아서 쓰고 10만 원 남으면 10만 원 저축하고, 10만 원 남으면 10만 원 저축하고, 이래서는 평생 1억 못 모읍니다. 그죠. 그러니까 요즘 시대는 다방면으로 여러분들이 머리를 쓰면 돈을 벌 수 있는 그런 것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그러한 지혜가 이제 생겨나게 해주는 것도 역시 이 염불을 열심히 하면 그런 정신이 깨어납니다.
그런데 그렇게 염불을 열심히 하려면 이제 꾸준히 염불이 돼야 되는데, 그렇게 꾸준히 염불을 하려면 앞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원력이 있어야 돼요. 원력이 없이는 이게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이제 원력을 세워라 하면 이제 이 신도님들은 겁을 내요. ‘아이고 내가 원력 세워서 끝까지 다 못 지키면 어떡하지. 죄가 안 되나.’ 죄 될 거 하나도 없어요. 그러니까 원력을 세우라 하면 무슨 거창한 원력을 세워야 되는 줄 아는데, 거창한 원력 세울 필요 없고, 자기 분수에 맞게,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그렇게 원력을 세워서 하면 반드시 성취를 하게 되고, 또 원력을 세워서 실천해 보다가 이게 아니다 싶으면 또 바꾸면 돼요. 그거는 그러니까 두려워하지 말고 원력을 세워서 열심히 이제 해야 된다 이 말이죠. 그래서 이 원력이라고 하는 것은 이 만물을 창조하고 성취하는 에너지원이 되고, 원동력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제 여러분이 원력을 세울 때 “뭔가를 되게 해 주십시오”라고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이렇게 이렇게 되겠습니다” 하는 원력은 성취가 됩니다. 그러니까 두려워하지 말고 원력을 세우는데, 문제는 강한 끊임없이 정진하는 노력이 따라붙어야 됩니다. 그래서 미래를 개척하는 그 투철한 생각이 있어야 된다. 지금 예를 들어서 나는 지금 살림이 팍팍하고 가난하다. 그럼 내가 부자가 돼야 되겠다. 그럼 부자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면 그 부자가 될 때까지 죽기 살기로 하는 겁니다. 해야지, 좀 해보다가 ‘아이고 나는, 나는 안 돼. 나는 이 가난한 게 내 팔자인가 봐.’ 팔자를 십자로 고칠 수가 있어요. 이게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그런 것을 실제로 이제 겪은 분이 이제 요범사훈이라는 책을 쓴 분인데, 그분이 사주팔자로는 벼슬도 못하고 자식도 없고 나이는 40세에 죽는다. 그게 그 사람 사주 팔자야. 그래서 이 사람이 나는 자식도 없고 벼슬도 못하고 40세에 죽는가 보다 했는데, 이제 어느 사찰에 가서 스님하고 의논을 했더니, 그 스님이 그렇지 않다. 당신도 자식도 놓을 수 있고 벼슬도 할 수 있고 수명도 길 수 있다. 그럼 어떻게 하면 되느냐 그래서, 그 스님이 일러준 대로 열심히 착한 일을, 3년 내에 착한 일을 3천 번을 하는데, 착한 일을 하나 할 때마다 기록을 해라. 그래서 3천 번을 채워라. 그래서 그 3천 번을 채워서 벼슬하고 자식 두고 다 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그것을 자기가 체험했기 때문에 책으로 남긴 게 요범사훈이라는 책이에요.
그래서 이게 오늘 너무 법문이 길어져서 빨리 끝내야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제 이러한 것이 이제 여러분들이 와서 법문만 듣고, 오늘 뭐 그런 소리를 들었다. 일어나면 금방 없어지면 안 되죠. 그죠. 해야 된다. 나도 뭔가 본인이 난 요거 요렇게 살고 싶다 그러면, 살고 싶은 것을 계획을 세워서 그게 원력인 겁니다. 세우고 그러면 이거를 이룰 때까지 나는 어떠어떠한 기도를 하겠다 해서 오늘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그래야 시작이 되지. 아이고 오늘은 힘들다 못하겠다. 잠이 오면 또 자느라고 못하고. 그러면 뭐 죽을 때까지 그냥 살아야지 어찌합니까? 그렇죠.
그래서 이제 대길상경이라는 경에서 무슨 말씀을 하셨냐. 바른 서원을 지니는 것이 인생의 진정한 축복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중생살이를 좀 재미있게 하려면은 탁 트인 마음을 가져야 돼요. 그래서 여러분이 신나게 염불을 한 번 해서 우리 한번 신나게 살아보면 어떨까요? 좋죠. 여러분들 신나게 살아보는 겁니다. 아셨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