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월스님 추모법회

우란분절 일정
법회일시 매년 6월 마지막주 일요일 법회장소 함월당

백초월 스님(1878~1944)은 불교계 독립운동을 대표하는 지도자입니다.

백초월 스님은 경남 고성 출신으로 14세 때 영원사로 입산하여 출가한 후 일제강점기 내내 불교계 독립운동을 주도했습니다.
각 사찰에서의 군자금 모집, 임시정부 및 만주 독립군 단체에게 군자금 제공,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혁신공보 발간, 승려독립선언서 제작 및 배포, 임시의용승군제 추진 등 불교의 독립운동을 진두지휘 하였으며, 중앙학림(현 동국대) 내 한국민단본부를 설치하여 상해 임시정부와 독립군에 제공할 자금을 모집하였습니다.

3.1운동의 중심에서 평생을 헌신하고, 중일전쟁 당시 용산역 ‘대한독립만세’ 격문사건 등을 주도하다 일제에 체포되어 모진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독립을 염원하며 형무소에서 순국하셨습니다. 진관사에서는 매년 백초월 스님의 기일(6월 29일)을 맞아 스님의 높은 정신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6월 마지막 일요일에 추모법회를 봉행하고 있습니다.

초월스님 연표
진관사 신도회 주요사업 테이블
1878년 2월 17일 경남 고성군 영오면 성곡리 금산부락 출생 14세 지리산 영원사 출가
1903-1904년 영원사 조실
1907년 해인사 선원에서 수행
1909년 범어서 강원에 주석 성도기(成道記) 작성
1910년 임제종운동(臨濟宗運動) 참여
1916년 영원사 주지취임 명진학교 교장을 지냄
1917-1919년 용화사 주석
1919년 상경
  • - 중앙학림 內 韓國民團部 (한국민단부) 본부 설립
  • - 2차 독립만세 시위 참가(조선민족 대표 33인 포함)
  • - 혁신공보(革新公報) 발간 및 사장을 지냄
  • - 독립운동 자금 모금활동으로 일제에 피체
1920년 3·1선언 1주년 기념 일본에서 만세운동 추진으로 일제에 피체
1931년 공주 동학사 강사
1935년 서울 신촌 봉원사 강사
1937년 진관사 마포포교당에 주석
1939년 일심교 군용열차 대서사건(기차 낙서사건)으로 투옥
1943년 독립운동 모금 사건으로 재투옥
1944년 옥중 순국
진관사 태극기

  • 01.진관사 태극기 발견 정황 2009년 5월 26일 오전 9시경 진관사 칠성각 복원 불사를 진행하던 중에 해체 벽면에서 한지로 둘둘 말린 예사롭지 않은 뭉치가 나왔습니다. 진관사 스님들이 모인 가운데 한지 뭉치는 조심스럽게 풀렸고, 그 속에서 80㎝*70㎝ 크기의 대형 태극기와 차곡차곡 접어놓은 독립신문 등의 희귀 자료들이 나왔습니다.
  • 02.진관사 태극기의 형태 왼쪽 귀퉁이가 불에 타 약간 손상된 태극기는 3.1운동 당시 독립단체에서 사용한 태극기로 추정됩니다. 현재의 국기와 비교하면 리(離)와 감(坎)의 위치가 바뀐 형태로, 이는 1942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회가 제정한 국기 양식과 동일합니다.
  • 03.진관사 태극기의 역사적(문화재적) 의의와 가치 태극기와 사료들은 진관사에 주석했던 백초월 선사가 일경의 감시를 피해 칠성각에 숨겨놓은 것으로 추정되며, 칠성각에서 발견된 17종의 유물은 국내에서 최초로 발견된 귀중한 사료들이 대거 포함되어 등록문화재 458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진관사 태극기는 일장기의 붉은 원만 도려내어 흰 광목천에 덧붙여 박음질을 하고 다시 푸른 염료로 물들여 태극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항일(抗日)과 극일(克日)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